안녕하세요, 또 이렇게 사연을 쓰고 있어요.
옆에 제 고양이도 사각사각 연필 소리에 맞추어 갸르릉거리는데, 완전한 밤이 따로 없네요.
이번 라디오 사연 주제는 얼굴이네요? 그래서 아까 망원동에서 마을버스 타며 집 오던 길에 본 소소한 일이 떠올랐어요.
마포 9번에 헐레벌떡 올라타 어디 앉을까 그 잠깐 새에 꽤 공들여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제 눈에 띈 두 사람의 옆자리. 뒤에서 두 번째 자리, 그러니까 둘이 앉을 때 한 명은 다리를 ㄱ자로 구부려 앉아야하는 그 바보자리 있잖아요,
거기 남자 한 분과 여자 한 분이 앉아있었어요. 그 찰나에 저도 모르게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아 맞아요.
좀 더 털어놓자면, 바닥을 보며 다니는 제 습관탓에, 남자 분이 신고 있던 고양이 자수가 박힌 양말이 눈에 들어와, 그 분에 제 시선이 집중된 거에요. 저희 집 야옹이랑 많이 닮았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그 옆 자리에 앉아 제 쪽 버스 창문에 비친 그 둘을 조심스럽게 보면서 왔어요. 그들의 얼굴을, '표정'을 읽어보고 싶어서요.
저는 사람의 입이 그 사람의 표정 몫의8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잘 생각해봐요. 입꼬리의 미묘한 그 차이, 전 그게 사람의 표정을 결정한다고 봐요.
아무튼 입꼬리를 일직선으로 유지한 체 입을 앙다문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볼이 아파 보일정도로 과도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대화를 지속하려고 무척이나 애쓰고 있더라고요. (‘애쓰다’라는 표현은 뭐, 제 주관이긴 해요.)
버스엔 우리 셋, 그리고 트로트에 심취하신 버스 기사 아저씨밖에 없었고, 그렇게 신나는 트로트에도 불구하고, 정말 유난히도 조용하게 느껴지는, 추운 버스 안이었어요. 제가 탄 다음다음 역에서 내리던 그 남자는
'난 어디 가서 못났단 소린 안 듣고 살아, 나 갈게’하며 여자가 보이던 방식과는 또 다르게 입꼬리를 올리곤, 손 한 번 들어 인사 비슷한 걸 하더니 내리더군요.
남자가 내리고 나서야 여자가 조용히 말하더라고요.
‘나도란 말이야’
내리고 나선 뒤돌아 보지도 않고 이어폰 끼고 제 가길 가던 남자와 달리, 여자는 버스가 그 남잘 지나칠때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유리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더라고요.
유난히도 깨끗한 버스 창문. 그 여자의 뒷통수와 어깨마저 추워 보이덥니다.
전 오늘 처음 알았어요. 뒷통수도, 어깨도 표정이 될 수 있다는 걸. 얼굴만이 표정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에요.
많이 춥네요, 버스 안, 집 오던 길. 모두 다요.
오늘은 노래 따로 신청 안 할래요. 노래를 골라주세요, 지나치게 따뜻하고 밝은 걸로다가요!
그럼 그 노래를 표정이 추워보였던 여자분께 바치는 걸로 할래요.
불현듯 네가 떠올랐다
불어온 계절에 수면이 일렁이다가
달그림자 너머로 두렷두렷 네 얼굴 모양이 돋아났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너는 거기 없어서
아무리 손을 뻗어도 돋을새김된 얼굴은 만질 수 없었다
사실 내 손끝은 너의 얼굴에 닿았던 적조차 없다
너의 뜨거운 머리를 잘라오진 못하고 두상만 빚을 뿐
색깔은 아직, 햇빛이 자꾸 변해서 칠하지 못했다
그 계절 너의 발끝이 어디를 가리켰는지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구의 얼굴인지 모를 두상을 세워 놓고
바람이 불 때마다 그림자가 찌그러져도
나는 그것이 너라고 믿지
Photograph by Chaya
김상민
네 표정이 싫다.
고 생각하는 순간 문이 닫혔다. 들려오던 음악 소리가 한 톤 줄어들었다. 음악이 줄어든 자리에 하얀 공백이 생겼다. 소음이 커다란 공백을 채웠다. 조그맣던 소음이 어느덧 크게 들렸고, 그럴수록 나는 너의 존재를 크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의 가장 사소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겠지. 톤이 줄어 어딘가 답답해진 음악이 뱅글뱅글 돌며 네 귓바퀴에 빨려 들어갔다. 어지러움을 느끼며 나는 뱅글뱅글 도는 네 귓바퀴에 시선을 던졌다. 무심코 던진 시선이 그만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조금 두터운 편인 너의 귓불, 귓불 위의 까만 점이 블랙홀처럼 시선을 잡아 끌었다. 귀걸이를 하기 위해 뚫어 놓은 상처처럼 보이지만 사실 넌 날카로운 걸 무서워해 귀를 뚫을 생각 따위 해본 적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너를 너무 잘 알았다. 내가 너를 아는 만큼 너도 나를 잘 안다. 그 사실이 가끔은 불편했다.
너의 귓불이 나의 시선을 잡아 끌 듯이 나의 모든 것이 너의 흥미를 끌겠지, 생각했다. 괜한 오기가 치밀어 억지로 시선을 옮겼다. 귓바퀴의 둥근 선을 따라 내 시선도 곡선을 그렸다. 적당한 크기의 잘생긴 귀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에게도 불쾌감을 주기 힘든 평범한 귀였지만 역시나 나는 너의 귀가 불편했다. 그 귀가 너에게 붙어있는 한, 네가 나의 가장 사소한 소리를 듣는 한.
한참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답답한 음악을 들으면서, 별 생각을 다했다. 여전히 답답한 음악을 우리가 동시에 듣고있다는 사실이 가장 신경 쓰였다. 그러다 너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네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걸까. 머릿속이 다 읽혀버린 것만 같아 얼른 고개를 숙였다. 시선 가는 데로 손을 내밀어 짚었다. 차갑고 매끈한, 세라믹 표면이 손에 닿았다.
조금 더 체중을 실어 기대면서 너의 눈빛을 떠올렸다. 손에 닿는 것 보다 더 차갑고, 매끈한 너의 시선을. 그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 더 따뜻하게 나를 보아 주기를 바란다. 어쩌면 너도 노력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너는, 깨진 얼음보다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보게 될 때가 있나 보다.
그런 눈으로 바라볼 때 너는 절대로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단 한번도 먼저 고개를 돌린 적이 없다. 매끈한 표면의 네 눈빛은 언제나 태연하게 나의 시선을 되받아 친다. 아마도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있을 너는 그러나 다른 감정으로 물어오는 듯 하다.
부끄럽지 않느냐고.
부끄러움을 들켰다는 것이 더 부끄러웠다.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는 너에게서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 한번 모른 척 넘어가는 법 없는 네가 야속했다. 너는 왜 단 한번도 고개 돌리지 않는가. 왜 단 한번도 눈감아 주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오기가 차 올랐다.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고개를 들었다. 너는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는 눈썹이 짙은 편이다. 긴 속눈썹에 쌍꺼풀도 짙다. 눈동자가 짙은 갈색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면서도 네 눈동자는 자꾸만 까만 색으로 기억된다. 까만 듯한, 사실은 짙은 갈색의 눈동자 속에 내 얼굴이 비쳤다. 너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내 눈동자에 너의 얼굴이, 수도 없이 반사되고 굴절되어 비친다. 이렇게 가까이서 너의 눈은 나를 담는다. 내 얼굴 뿐 아니라 내 존재를 꿰뚫어 너의 눈에 담는다. 박히는 너의 시선은 물론 아프다.
가끔씩 우리는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볼 때가 있다. 긴 시간은 아니다. 길지않은 시간동안 나는 너의 속눈썹이 몇 개인지 셀 수도 있다. 그러나 길지 않은 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긴 시간동안 우리의 시선은 불평등하다. 태연한 듯 보여도 사실 수도 없이 흔들리는 나의 새벽 두 시도, 나태가 끌어내리는 주말의 오전도 너는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때 네가 무슨 표정을 짖는지를 나는 볼 수 없다. 그저 몰랐던 상처가 문득 아파오듯, 네 시선을 느끼곤 할 뿐이다.
지루한 눈싸움을 끝낼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어차피 오늘은 승부를 낼 수 없을 테니까.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자 너는 코를 찡긋, 움직였다. 검지로 살짝 눌렀다 뗀 것처럼 네 코가 움직였다. 코가 그리는 곡선을 바라보았다. 깊은 미간과 오뚝한 콧날이 그리는 곡선, 조금씩 넓어지는 콧등, 콧망울에서 퍼지는 콧볼과 콧구멍의 곡선에 시선이 이르렀을 때 다시한번 찡긋, 팔자 주름이 옅게 잡혔다가 사라진다.
너는 어렸을 때 틱 장애를 앓았다. 평소에는 그 자리에 붙어 있다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는 코의 존재가 한번 인식하고 나면 더없이 신경 쓰이곤 했다. 신경 쓰지 말아야지, 생각할수록 더욱 신경 쓰였고 너는 결국 코를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껏 코를 찡그림으로서 느껴지는 불편이 코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다. 너는 불편을 통해 안심했고, 안심이 유효한 시간 동안만 코의 생각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나에겐 너의 존재가 그랬다. 평소에 인식하지 못하는 너의 존재가 문득 느껴질 때면, 그저 외면하면 그만일 텐데 나는 한없이 마음을 구기고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너는 예전처럼 코를 구기지 않는다.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가볍게 코를 찡긋하는 습관과, 동시에 패이는 옅은 주름이 흔적처럼 남았을 뿐이다. 아무리 떨쳐내도 결국 장애가 네 얼굴에 흔적을 새겼듯이 나 역시 너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거푸 마신 맥주 때문인지 얼굴이 달아 올랐다. 아마 기분 탓일 것이다. 아무리 술을 마셔도 얼굴에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너의 피부는 평소보다 오히려 창백했다. 씹어 삼킨 육포가 맥주와 함께 뱃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느낌이었다.
위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을 육포를 상상했다. 그리곤 입 안에서 날카롭게 찢어졌을 육포를 상상했다. 속을 보여주기 싫은 듯 지금은 앙다문 너의 입을 보았다. 입술이 갈라져 있었다. 입술 색이 어두운 편이라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다. 입가 주변에 수염이 거뭇거뭇 자라 있었다. 피부색이 어두운 편이었음에도 거뭇한 수염은 도드라졌다. 이제 앙다문 입을 벌릴 시간이다. 또다시 입을 벌리고, 단단한 육포를 날카롭게 찢어, 맥주와 함께 삼킬 시간이다. 한껏 마음을 구겼으니 또 한동안은 너에게서 해방되어 입을 놀릴 수 있을 것이다.
기댔던 세면대에서 손을 떼고 손잡이를 돌렸다. 예상보다 세찬 물줄기가 쏟아졌다. 적당한 수압으로 맞춘 뒤 정성스럽게 손을 씻었다. 허리를 똑바로 폈다. 허리춤에 튄 물방울을 털어 냈다. 구겨진 왼쪽 카라를 똑바로 세웠다. 니트 밖으로 빠져 나온 셔츠를 집어 넣다가, 아예 벨트를 풀고 다시 정리했다. 길지 않은 까만 머리칼을 쓸어 보았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마지막으로 왼쪽. 한 발을 옮겨 문고리를 잡고는 곁눈질로 너의, 아니 나의 얼굴을 보았다. 문고리를 돌렸다. 줄었던 음악이 원래의 소리를 되찾고, 나는 우리의 세상에서 걸어 나갔다.
1.
죽음은…형이상학적이고…두렵지만…또 아무것도 아니죠…운구차 앞에서…영정 사진을 들고 걷는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진 걸 보니…전염성은 약한가 보군요…표정을…조심해야 해요…광대 분장이 유행이라죠…당신의 웃는 얼굴을 보고…목을 맨 사람이 있다고…버려진 일기장을 들추어 보았소…그것…당신의 것이 맞지요?
2.
고기를 물어뜯었다 육즙인지 피인지 모를 것이 입 안 가득 배어나왔다 모든 액체는 비릿하지, 비명이 목 끝까지 나왔지만 묵묵히 씹었다 차마 음미하지는 못하고 너는 이게 맛있어 보이니, 늑대가 모여들고 있다 뼈 한 조각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
끈적이는 것들이 있었다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는 것도
잡으려 하면 미끄러지며 달아나는 것도 있었다
밤이면
숨어있던 것들이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그런 날이면 미끄럼틀에서 한없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일어나면 이마가 온통 축축했다
그것들이 남기고 간, 혹은
스스로 배설한
4.
누구신가요,
나를 향하지 않은 눈동자의 주인
구운 굴비의 흐릿한 눈깔을
그는 잘근잘근 씹었다
맛있어요? 나는 모르겠어
위장을 노려보고 있을 것
동그란 눈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5.
한밤 중 쿵 소리가 났다
오늘 밤에는 누구의 꿈이 또 날개 부러진 새가 되어 추락하고 있을까
불을 켜고자 했으나
켜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
서늘한 숨소리는 누구의 것일까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마저
울음소리인 것 같기도 해
6.
비가 와 습한 곳이었고 하얗게 질린 남자가 입 꼬리를 올렸다
지나가는 그림자 마다 곰팡이처럼
얼굴들이 피었다
모두가 웃고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비가 그치지 않았다
모든 테이블에는 거울이 있었다
구름이 걷히기 전까지 남자는 등불 없이도 자화상을 그릴 수 있었다 얼굴이 곳곳에 퍼지고 있었으므로
구태여 다시 찾아온 지독함을 다시 마주한 것은, 어느 겨울 날 아주 화창한 오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우아한 향기가 나는, 그러니까 남자친구에게 잘 보일만한 향수를 사러 친구와 함께 가게에 갔던 날이었다. 나는 가게 조명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동그란 전구 속에 노르스름한 빛이 예쁘게 담겨있었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닥치는 대로 냄새를 맡아대는 도중 친구가 돌연 고개를 들며 투덜댔다. 나 이것 참 사고 싶었는데 말야, 재수학원 올라가던 그 엘리베이터에서 나던 냄새랑 똑같아. 맡을 때마다 도살장 끌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라니까.
나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열 번째 향수를 코에 가져다 대면서 도-살-장, 하고 되뇌었다. 단어를 오물거리는 것만으로도 왠지 입안이 비릿해지는 기분이었다. 하도 냄새를 많이 맡아댄 탓에 머리가 아릿아릿할 지경이어서 이내 고개를 들었다. 노르스름한 전구 속에 들어있는 새카만 필라멘트 덩어리가 눈에 잡혔다. 머리가 띵했다. 지독하게도 익숙한 시큰함이 코를 찔러왔다.
까맣게 잊고 있던 냄새였다. 매캐하다는 말은 이 것을 형용하기에 부족했다. 찌르는 듯한 시큰함과 매운 공기,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간지러운 텁텁함은 자음과 모음의 경계선을 비집고 나왔다. 날씨가 어떻든 매캐한 공기는 여전했다. 다행히도 아침에서 저녁으로 갈수록 비교적 옅어지곤 했는데, 나는 그것이 우리가 거리에 나가서 마셔왔거나 혹은 각각의 가방에 모두 담아갔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했다.
외부의 그 공기가 달라붙기 시작했던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휘어지듯 접힌 눈꼬리 뒤 끝에는 입꼬리가 간신히 매달려있었다. 절벽 끝의 시선은 하나의 시선과 마주쳤다. 이제 나가는 거야? 피곤하지. 잘 다녀와. 자꾸만 처지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 보이면서, 아래에서 힘을 주어 끌어당겼다. 패인 주름을 쭉 밀어 간신히 – 안녕 – 하고 웃었다. 구겨짐 그 뒤편에서 나던 매캐한 냄새, 그것은 천 구백 구십 육 년도의 어느 기쁨 한 움큼과 언젠가 철없이 대롱거리던 한 유년시절과 또한 괜스레 이죽거리던 못난 딸아이의 모습으로 말미암아 피워졌을 것이다. 부드럽게 모닥불을 맞이하는 일, 그러나 그 뒷일은 썩 유쾌하지 못한 일이었다. 잿가루가 폴폴 날려서 온 눈에 코에 귀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쓴 것인지 단 것인지 신 것인지 짠 것인지 느낄 단 하나의 틈도 없이, 그것은 나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식도로, 위장으로, 더 밑으로 내려갈 때까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이윽고 위장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질문했다. 무엇일까. 각진 모서리가 위장을 긁고 찌르는 것이 어서 몸에서 빠져나가기를 기도하기도 했다. 아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서히 잦아지자 나는 안도했다. 구겨지듯 입 꼬리가 올라갔다 – 안녕 – 하고 답했고 문이 닫혔다. 얼굴의 경계선 끝 미어터진 웃음 위로 여러 겹 주름이 층층이 쌓였다.
나는 절망했다.
매일 아침 등교하는 두 딸의 화장품 냄새와 엄마가 끓이는 찌개 냄새로 애써 덮어보려 하신다는 사실 역시도. 괴로운 얼굴을 대면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간신히, 그의 얼굴 뒤편에게
...아빠,
하고 불렀다.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