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다. choo
누가 그러던가요,
몸으로 익힌 것은 잊지 않는다고
나는 수영하는 법을 잊고 말았어요
수영장 레인 중간에 멈추어 서서
한참을 곰곰이,
수영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 뭐가 있는 걸까요
숨을 참고 조그만 부표처럼
등을 말아 동동 떠있는 것밖에는,
수영장에는 파도도 치지 않네요
편지를 품고 밀봉된 유리병,
나는 이대로 가라앉을 순 없는데
돌로 굳은 주사위들만 양손 가득히
숨을 참는 법까지 잊고 나면
나는 수영장 물을 빼게 될까요
떠올려 줄 것이라곤 남지 않을 텐데
바닷속을 날던 날들이 있었군요
어떤 주사위의 무게를 재다 잊고 말았을까요
잊어버린
잃어버린
이미 멀어진
파도
하늘에는 고래가 날아다니고 있어 우리의 언어로 적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와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귀를 감싸 쥐고 있어 왜일까 저 아름다운 소음을 두고 아름다운 말로 편지를 가득 채웠던 날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귓가에 주사되는 말들이 멈추지 않았어 말이라기보다 차라리 소리에 가까웠던 발음 새까만 바닷속에서 속삭이는 고래처럼 네가 그 때 그 아이니 소나기를 뿜고 있는 거대한 실루엣이 날아다니고 있어 어느 날 마주치게 될까 주사기를 들고 하늘로 걸어가는 동안
이유 없이 슬퍼지는 날도 있었어 그 이유를 기록해둔 사람이 있었다 수첩을 훔쳐보다가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사소한 단어를 발음해보았어 시옷, 리을, 이응, ㅏ. 불가능한 조합을 상상해 보았어 그런 날이면 우린 영원할거야, 가만히 속삭여보았지
파랗게 빛나고 있어 낮달 너머 너와 나의 소우주는 빙빙 돌고 있어 우리는 아름드리 펼쳐진 공중정원을 거닐고 있어 달에는 토끼가 바다에는 갈매기가 하늘에는 고래가 우주에는 너와 내가 부서지는 행성의 가장자리에 서서 유영하는 우리가 파편이 되어 떨어지는 행성의 유물들이 발끝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바닷거품이 찬란해지도록 저었어 부글부글 끓으며 팽창하는 소우주 그리고 빛나는 별 한 송이 그리고 너 그리고 나 그리고 고래 그리고 갈매기 그리고 토끼 어디까지 떨어지게 될까 우주의 파도와 부서진 행성의 중력 사이에서 산책하는 우리는
하늘에는 고래가 날아다니고 있어 해안이 가까워지고 있어 하얀 물보라가 보이는 시간이 올 거야 영원히 걷고 있어서 한순간도 닿지 못했던 장소를 그리워해 고래가 울고 있어 언젠가 닿으리란 기대를 품고 구름에 띄워 너에게 편지를 보낼게 그곳에는 달이 뜨고 있니
무제
choo
깃털
김상민
1.
언젠가부터 눈을 감으면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깃털이 떠올랐다. 감은 두 눈의 까만 배경 너머, 아득한 공간을 홀로 떨어져 내리는 깃털. 아주 천천히 움직여서 가만히 떠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묵묵히 떨어져 내리는 깃털. 그런 깃털 하나가 관자놀이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깃털의 하강이 지루해져 결국 몸을 일으킨다. 눈을 감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어둠이 좁은 고시원의 방 안을 뒤덮고 있었다. 불투명한 창문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침대를 벗어난다.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크게 한 모금 들이키고는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한다. 모든 행동이 두 발짝이면 충분한 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침대에 걸터앉는다. 취기로 인해 중력이 두 배는 강하게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다. 머릿속의 깃털과는 다르게 지금의 나는 바닥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정작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단단한 몸뚱어리가 아니라 의식이다.
2.
간만에 붕 뜨는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고시생의 생활이란 팍팍한 것이므로, 오랜만의 술 약속은 일탈의 쾌감마저 주었다. 일주일 중 유일한 휴식 시간인 일요일 저녁은 애초에도 소중한 것이었지만 약속이 있는 날이면 특히나 들뜨는 기분이 된다. 고시생활의 가장 큰 적은 어려운 시험 문제도, 나 자신도 아닌 외로움이었다. 고시 공부를 시작하고부터는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붐비는 일요일 밤의 유흥가가 좋아졌다.
선배는 먼저 술집에 도착해 있었다. 못 본 사이 얼굴이 조금 상해있었지만 나를 향한 미소 깊숙이 묻어나는 자신감만은 여전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대학교 1학년부터 변치 않는 선배의 특징이었다. 신입생 시절은 1년 차이도 무척이나 크게 여겨지던 시기였으므로, 네 살이나 많던 선배는 내겐 거인 같은 존재였다. 당시의 선배는 언제나 자신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그럴만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알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선배 앞에서 나는 아프락삭스에게로 날아가는 어린 새가 된 기분이었다. 중학교 시절 소설 데미안을 읽은 후 막연히 품었던 문학에 대한 동경으로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한 내게, 초등학교시절부터 9년을 외국에서 살다 온 선배는 출발선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랬던 선배가 소설에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 나를 예뻐했다. 선배를 따라 마크 트웨인을 읽고, 피츠제럴드를 읽는 대학생활의 중간에서 영문학 대학원에 진학하는 선배를 볼 수 있었다. 대학원 진학의 이유를 내게 설명한 적은 없지만, 나는 꿈을 향해 날아가는 조나단 리빙스턴의 이미지를 아무 망설임 없이 그에게 덧씌웠다. 그렇게 앞으로 훨훨 날아갈 것만 같던 선배를 기억한다.
“요즘은 다들 근사해 보이는 일만 하려고 하잖아. 폼 나고 돈 많이 버는 일들만. 사람들이 꿈이 없어.”
단단히 응어리진 말들을 토해내고는 허겁지겁 소주를 집어삼키는 선배에게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선배는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스스로 조나단의 깃털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런 이미지를 그에게 덧씌우고 동경하던 영문학도는 이제 선배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혼란에 빠지는 고시생이 되었다. 선배에게서 떨어져 나온 깃털이 술집 안을 풀풀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빠르게 사라지는 들뜬 기분과, 사그라지는 만큼의 속도로 밀려오는 혼란 속에서 소주를 홀짝이며 열정, 노력과 같은 단어를 흘려 들었다.
자신만만한 목소리 뒤에 숨어있는 뒤틀린 우월감이 너무 잘 보였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음을 무기로 세상 모두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그래야만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된 선배의 처지가 나를 찔렀다. 선배가 저토록 깔아뭉개는 한심한 젊은이들 속에는 분명 나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무언가에 짓눌린 날개를 달고 조금은 처절한 모습으로 변한 선배는 그렇게 내 눈 앞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3.
의외로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유흥가는 묘한 인상이었다. 일요일 자정이 지난 유흥가에는 화려함의 잔상만이 뚜렷했다. 짓밟힌 낙엽처럼 흩뿌려진 전단지와, 전봇대마다 발견되는 누군가의 토사물. 화려함이 떠난 뒤 남은 이 모든 잔상이야말로 유흥가의 민낯은 아닐까.
속마음을 들켰을 때 보다 속마음을 숨기려던 의도를 들켰을 때가 훨씬 추하다. 한 때 거인이던 선배의 민낯을 가장 추한 방법으로 지켜보는 것은 어쨌거나 묘한 일이어서 제법 오랜 시간 선배의 말을 듣고 앉아 있었다.
당시의 기분을 잘 설명할 수는 없다. 선배가 미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동정심을 조금은 느꼈던 것 같다. 속이 뻔히 드러나는 자기방어를 하는 선배가 안타까웠고, 미묘한 우월감을 느끼다가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했다. 선배의 말을 경청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심코 소주병을 쳐서 깨어먹은 이후로는 줄곧 중력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문제는 균형 잃은 소주병을 잡아 당기는 중력에 있다고, 균형 잃은 모든 것을 끌어들여 결국 깨트리고 마는 중력에 있다고. 테이블 아래로 내린 내 팔이 축 늘어져 있었다. 중력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4.
최대한 바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어지간히 마신 소주 때문인지 걸음이 바닥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센서등이 없어 암흑 같은 건물 내부를 나는 발 한 번 잘못 딛지 않고 꾸역꾸역 올랐다. 4층에 다다른 나는 잠시 멈췄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긴다. 두 층만 더 오르면 건물의 옥상이지만 옥상에 도착한들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조금은 자포한 심정이 되어 집 앞에 선다. 그러니까 나도, 선배도 모두 무거운 몸뚱아리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였다. 문을 열고는 강한 날개로도 감당할 수 없는 몸뚱이를 침대 위에 던진다.
중력의 작용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깃털처럼 가벼운 물체는 그 작용을 받지 않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너무 가벼워 보인다는 것, 너무 가벼워서 마치 떠오를 것만 같다는 것, 조금만 바람이 불면 실제로 조금은 떠오르기도 한다는 것, 그러나 어김없이 떨어져 내리고 만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커다란 문제의 순환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깃털과 어울리는 서술어는 ‘떠오르다’이지 ‘가라앉다’가 아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무게 역시 딱 그 정도인 것 아닐까. 금방이라도 떠오를 수 있을 것처럼 가벼워 보이지만, 또 실제로 몇 번은 지나가는 바람을 만나 휙- 하고 떠오르기도 했지만 크게 봐서는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하게 천천히, 안정적인 포물선을 그리며 가라앉고 있는 그 미묘한 무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알아채지 못할 속도로 인생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아득한 하늘과 바닥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5.
내가 고시 공부를 결심한 건 군생활 중의 일이었다. 입대 전에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길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길로의 선택은 의외로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병장으로 넘어가던 즈음의 어느 새벽, 경계근무를 서던 초소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본 일이 있었다. 유난히도 하늘이 깨끗하던 군부대에서 별똥별을 보았다는 부대원들은 종종 있었지만 직접 목격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나에게도 타오르던 별똥별처럼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다. 가능성으로만 남을 수 있었던 시절. 중고등학생 때의 나는 스스로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을 듯이 행동했다. 출발선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당시의 나는 공부를 잘했다. 공부 이외의 것으로 평가 받을 만한 거리가 없었으므로, 내가 열심히 한 모든 것을 잘한 셈이었다. 그런 내가 데미안을 읽은 후로 문학에 빠졌다. 누군가 내게 꿈이 무엇이나 물어오면 망설이지 않고 시인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하던 순간의 내가 얼마나 빛나 보였을 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내가 내뱉는 말의 무게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다. 그저 가벼운 마음이었다. 정말 시인이 될 것이라 확신했던 것은 아니지만 또 시인이 되지 못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 삶이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미끄러지기 시작한 것은.
최고의 명문대 중 한 곳의 영문과에 진학했다. 수능 점수가 조금 남았는데도 굳이 영문학과에 진학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곧 더 이상 가능성으로만 남을 수 없는 시간이 찾아왔다. 내뱉은 말들의 무게가 그대로 엄청난 압력이 되어 돌아왔다. 어른들은 젊음의 가능성이 부럽다고 말했지만 정작 나는 젊음의 가능성이 무서워졌다. 친구들이 하나 둘씩 취업을 하고 시험에 합격했다. 나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점점 구체성을 더해갔다. 더 이상 포즈를 취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 했지만 나는 가능성이 별 것 아닌 것으로 밝혀질까봐 달려나가지 못했다. 나는 계속해서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는 알로 남고 싶었다. 눈을 감으면 하얀 깃털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가능성을 마주할 때면 어김없이 뒤돌아 섰다.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다 군인이 되었다. 군인이 되는 것은 비겁했던 내게 남아있던 마지막 도피처였던 것은 아닐까. 시간이 흘러 어느새 병장이 된 나는 저녁으로 나온 소고기를 삼키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평하게 이 소고기를 씹어도 되는 것일까. 그날 밤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게 되었다. 아득한 거리에서 타오르는 별똥별을 꼼짝 않고 바라보며 나는 문득 고시를 준비하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우리 모두는 태연하게 소고기를 씹는 존재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6.
강하게 나를 끌어당기는 중력이 견딜 수 없이 갑갑하게 느껴진다. 침대에서 두 발짝이면 가장 구석진 곳까지 닿는 고시원이 답답해진다. 물을 마셔도 풀리지 않는 갈증이 목이 탄다. 아까 오르려다 포기한 두 층을 아무래도 마저 올라야지 싶었다. 군인 시절 봤던 별똥별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초록 페인트가 칠해진 옥상이었다. 옥상 가장자리를 크게 돌며 주변을 바라본다. 멀리 학교가 보이고, 백화점이 보이고, 불이 들어와 있는 노래방 네온사인이 보인다. 그 위로 멀건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별 하나 없는 저 밤하늘을 깜깜하다고 해야 할지 밝다고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어쨌거나 내 눈에 그 어떤 별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하늘을 보며 걷다가 난간에 발가락을 찧었다. 격렬한 고통이 찾아왔지만 순식간에 멀쩡해진다. 아주 약간 까졌을 뿐 피가 나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순식간에 타오른 고통이 또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떠오르게 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우주 어딘가에서는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으리라는 것. 이제 방으로 천천히 내려가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들은 지나치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벽돌 담벼락에 걸쳐있다.
여긴 혼자의 담벼락, 언젠가 박혀진 나사들이 제멋대로 할퀸 틈 사이로 휑 바람이 돌고. 사다리는 말이 없다.
하강과 승강은 결국 하나의 답을 도출해내기도 한다. 오른편에 앉은 사람과 눈 맞추면서도 목덜미에 불안이 퍼렇게 맺히는 날들이 있었고 어둠 속에서 더 밝아지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높아지고 싶지만 또한 쓰다듬어지고 싶어, 나를 바라봐 주세요, 사랑해주세요, 부는 입김이 제 것을 향한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쉼표와, 쉼표와, 쉼표가 이어져,
나는 끝내
표류하고
놓아버린 것 같다. - 것 같다 고 황급히 입을 닦는 것은 나의 비겁함에 연유한다. 생각을 멈추기로 한다. 어둠보다 어두운 곳에서는 눈을 감고 있다고 믿을래.
저 너머의 세상은 불완전하고-
온점은 소용돌이 가운데서 태어난다.
동시적인 것들은 마구 흩날리지만 그래서 또 나름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고 일기장에 꾹꾹 우겨 적었다. 바다내음은 싱그럽기도 비릿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파도로 밀려오니까. 네 생각이 문득 들어 몽당연필을 집어 들었다. 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너에게 동그라미를 그려줄게.
표류하는 조난자의 위치를 표시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동그라미 하나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는지. 부력이라고 나는 이름 지을게. 끝이 뭉툭한 연필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 소용돌이치는 것으로부터 동시적인 것들은 시작하고 끝마친다. 조그만 홈이 나있는 너도 다시 부풀어 오를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표류하는 조난자가 부여잡고 떠오를 수 있는 조그마한 중력이라도 되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러니까 사다리에서 그만 내려와도 좋다.
나는 담벼락 아래 바로 여기서 동그란 온점을 그리고 있을게, 빙글빙글 돌면서.
untitled.4
-choo
뱃머리의 출입문을 제거하고 객실을 증설했다
무게중심이 증가했다
과적했다
무게중심이 또 증가했다
무게중심이 높아지면 복원력을 잃은 배는 뒤집어진다
단순히 욕심만이 배를 뒤집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
난무하는 변명과 억측, 그리고 또다시 억측을 일으키는 침묵은
죄없이 눈부신 4월의 바다에서 일어난 비극을 키웠을 터
가벼우면 떠오를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무식할 따름이더라
가벼운 방식으로는 떠오를 수 없는 그 참혹함
천일하고도 칠십 이일이 지나고 나서야 수면 위로 배가 떠올랐다
그동안 한없이 약화된 회복 탄력성
다시 떠오르지 않는 신뢰의 공
우리는, 사회는, 떠올라 제자리 찾기가 어렵다
이 모든 걸 아무것도 모르는 듯,
어김없이 4월의 바다는 죄없이 눈부시다